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청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1,600년 전 백제의 타임캡슐
충주 장미산성, 백제 한성기 고도화된 토목 기술과 체계적 물 관리 시스템 확인
최근 충북 충주시에 위치한 사적 장미산성에서 백제 한성기 시대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형 목조 집수지와 희귀 유물들이 대거 발굴되었습니다. 이번 발굴은 고대 산성 운영의 핵심인 수자원 관리의 비밀을 풀어낼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압도적 규모의 대형 목조 집수지
산성 성내 북쪽 계곡부에서 확인된 목조 집수지(물 저장 시설)는 현재까지 발견된 백제 한성기 집수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내측 한 변이 약 6.7m, 깊이가 약 1.8m에 이르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대형 시설입니다.
이 집수지는 최대 약 8만 3,000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추정됩니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연구진은 최대 용량의 약 70%를 실제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성 안에 약 300명이 머물면서 두 달 반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물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특히 길이 7m가 넘는 대형 목재를 확보하고 정밀하게 가공한 뒤 9단으로 맞물려 쌓은 구조는, 물이 모이는 계곡부의 환경을 고려해 계획적으로 시설을 축조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1,600년 전 백제의 체계적인 수자원 관리와 높은 수준의 토목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생활용수와 식수의 분리 및 내부 구획
장미산성 주변에서는 대형 목조 집수지 외에도 샘이나 우물 형태로 볼 수 있는 소형 집수시설이 함께 확인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대형 집수지에 저장한 물은 세척·취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별도의 작은 집수시설에서는 식수를 확보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수지 바닥에서는 우물 정(井)자 형태로 내부 공간을 구획한 구조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내부 구조가 물의 흐름이나 시설의 안정성, 또는 관리 방식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는 앞으로의 정밀 조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방 산성에 투입된 ‘왕성급’ 판축 기술
현재 장미산성은 겉으로 보기에 돌로 쌓은 석축산성이지만, 그 하부 발굴 결과 백제 한성기의 판축(版築) 성벽이 확인되었습니다. 판축 기법은 흙을 얇게 펴서 시루떡처럼 단단하게 다져 올리는 방식으로,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 등 백제의 수도(왕성)를 지을 때 사용된 당대 최고급 축성 기술입니다. 이와 함께 중앙 양식의 고급 토기와 칠기류가 다량 출토된 점은 당시 장미산성의 높은 위상을 대변합니다.

(이미지 출처: 국가유산청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진흙이 살려낸 5세기의 타임캡슐, 희귀 유물 출토
이번 발굴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집수지 내부 바닥에서 1,600년간 썩지 않고 보존된 유기물 유물들이 다수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수지 내부의 습윤한 토양과 진흙층은 산소 유입과 미생물 활동을 제한하는 환경을 만들어 목재와 식물성 유기물이 오랜 시간 비교적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국내 가장 이른 시기의 실물 자료: 곡식이나 흙 등을 퍼 담아 나르는 데 사용한 삼태기와 소의 코에 끼워 길들이거나 통제하는 데 사용한 소 코뚜레가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출토되었습니다.
- 자루가 온전한 철제 도끼: 철로 만든 도끼날뿐만 아니라, 나무로 깎아 만든 손잡이(자루)까지 온전히 결합된 완형의 도끼가 국내 최초로 확인되었습니다.
- 생생한 환경 복원 데이터: 집수지 내부의 흙을 분석한 결과, 쌀·팥·콩 등 재배식물과 야생식물을 포함한 약 50여 종의 식물 유체가 확인됐으며, 소·돼지·개 등의 동물 뼈도 다량으로 수습되었습니다.
장미산성의 역사적 의의
충주 장미산성의 이번 발굴은 단순히 고대의 대형 물 저장 시설 하나를 발견한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제 한성기 최대 규모의 목조 집수지, 왕성급 판축기술로 축조된 성벽, 중앙양식 토기와 칠기류, 그리고 다양한 생활유물이 함께 확인되면서 장미산성이 당시 백제의 중원지역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줍니다.
대형 목재를 확보해 정밀하게 가공하고, 중앙에서 사용하던 최고급 판축기술을 산성 축조에 적용했다는 점은 백제가 이 지역에 상당한 조직력과 기술력을 투입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번 발굴은 장미산성이 단순한 지방 방어시설을 넘어, 백제가 중앙의 기술과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한 중원지역의 핵심 거점이었음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 공식 조사 성과